아시아 독립출판물을 위한 플랫폼,
베를린의 ‘커먼 임프린트’

인터뷰•글: 박은지

베를린에 거주하며 ‘아시아'라는 카테고리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를 접할 때면, 종종 그 대상과 관계 없이 불편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지구에서 가장 넓은 대륙인 아시아의 지역 간, 문화 간 차이를 무시한 채, 이를 유럽의 구미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섞어 그럴싸하게 차려낸 듯한 모습은 씁쓸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아시아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리딩룸, 커먼 임프린트Common Imprint의 오픈 소식을 들었을 때, 설렘과 기대, 그리고 궁금증이 함께 일었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그래픽 디자이너가 이를 기획해 열었을 때는 분명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개성 있는 출판물들이 ‘아시아 독립출판물'이라는 이름 하나로 납작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말이다. 그래서 커먼 임프린트의 운영자인 김영삼 디자이너를 만나 물었다. 베를린에서 왜, 그리고 어떤 책들을 보여주려 하느냐고.

"일단 베를린에서 아시아 출판물을 접하기 쉽지 않아요. 이 곳에 독립출판물이나 예술 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은 많지만 아시아 출판물은 굉장히 한정적으로 소개되고 있고, 특히 독립출판물 중에 ISBN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책들은 일반 서점에서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베를린 시내에 위치한 독립서점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시아 독립출판물을 다수 구비 해두거나 이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그나마 연례 행사인 북 아트 페어에 아시안 퍼블리셔나 작가가 참여한다면, 일주일 남짓 안되는 기간 동안 그들의 출판물을 볼 수 있는 정도다. 이는 단순히 아시아와 유럽의 지리적인 조건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유럽 기반의 출판사와 그래픽 디자이너, 책 제작자의 출판물이 국내 독립서점과 북 아트 갤러리, 미술관 내 서점 등에서 꾸준히 소개된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말이다.

"독일은 출판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규모가 크고 나름대로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는 출판사들이 많아요. 예술 출판물을 전문적으로 발간하는 출판 업계에도 기획부터, 인쇄, 유통까지 전 과정을 혼자 해결하는 대형 출판사들도 몇몇 있고요. 이런 출판사들은 아시아의 현지 디스트리뷰터 없이도 어렵지 않게 출판물을 유통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판로는 명확하지 않으니까, 이 곳 베를린에서 아시아 독립출판물을 다양하게 접하기는 어렵죠."

Common Imprint, a platform for
Asian independent publications in Berlin

Interview•Text: Eunji Park

Living in Berlin, I often feel uncomfortable when I come across content that is categorized as Asian regardless of the culture it highlights. It's a bitter pill to swallow when the differences between regions and cultures of the largest continent on the planet are ignored and unique cultures are blended to suit European tastes. Therefore, when I heard about the opening of Common Imprint, a reading room for Asian independent publications, I was excited, expectant, and curious. A graphic designer based in Germany and Korea organized this project, which led me to anticipate that there might be something special about it but also to fear the result of lumping together unique publications as “Asian independent publication.” I caught up with the designer behind Common Imprint, Sam Kim. I asked why he had initiated the venture, and what kind of books he wanted to showcase in Berlin.

Kim replied, "First of all, it's not easy to find Asian publications in Berlin. There are a lot of bookstores here that carry independent and art publications, but the selection of Asian publications is very limited, especially independent publications, which often don't have ISBNs, and it's hard to find these books in regular bookstores."

Indeed, there are dozens of thematic and independent bookstores in the city of Berlin, but none has a large selection of Asian independent publications or focuses on them. If an Asian publisher or author is just represented at the annual Book Art Fair, it's for a little less than a week. This is not simply due to the geographical distance between Asia and Europe. Consider that the work of European-based publishers, graphic designers, and bookmakers are consistently available in independent bookstores, book art galleries, and art museum bookstores in Korea.

"Germany has a long history of publishing, so there are a lot of publishing houses that are large and well-established in their own system. There are also some large publishing houses that specialize in art publications and handle the entire process from planning, printing, and distribution on their own. These publishers are able to distribute their books without the need for local distributors in Asia. On the other hand, it is difficult to find a wide range of Asian independent publishers here in Berlin, as the distribution channels from Asia to Europe are not as clear-cut."

현재 예약제로 운영 중인 리딩룸에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400여 종의 출판물들이 진열되었다. 대부분은 리딩룸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서울의 ‘더 북 소사이어티’의 협력으로 마련되거나 그가 북 페어를 직접 방문해 가져온 출판물로 꾸려졌다. 리딩룸에 마련된 서가를 찬찬히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출판된 전시 도록과 작품집, 잡지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낯선 언어로 출판된 책들 앞에선 잠시 머뭇거렸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미묘하게 다른 페이지 레이아웃과 책의 구성이 흥미로웠다.

그는 리딩룸의 컬렉션을 구성하는 데 있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원어와 영어가 함께 병기되거나 원어만 기재되어도 이미지와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적인 요소가 눈에 띄는 책들, 그리고 해당 지역의 로컬리티를 이해하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하는 책들을 중심으로 선별했다고.

The Type에서 발행한 이 시리즈는 중국 서체에 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한 결과물이에요. 라틴 알파벳이 베이스라인을 기준으로 조합되는 반면 CJK(Chinese-Japanese-Korean)는 스퀘어 안에서 정렬되고 디자인 되거든요. 중국의 타이포그래피 역사와 조판 방식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문자 디자인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죠.

The reading room of Common Imprint, which is currently open by appointment, features more than 400 publications from East and Southeast Asia. Most of them were chosen in collaboration with The Book Society in Seoul, which first proposed the reading room project, and were brought to Berlin by Kim after he obtained them at book fairs. As I perused the shelves in the reading room, my eyes naturally lingered on the exhibition catalogs, catalogs of art collections, and magazines published in Korea. I paused for a moment in front of books published in an unfamiliar language. As I turned the pages, I was intrigued by the subtly different page layouts and organization of the books.

Kim said he had a few principles in mind when organizing the collection in the reading room. He focused on books that contained both their original language and English or those that were in the original language alone but had striking images, illustrations, or design elements. He also carries books that have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understanding one or another region.

"This series published by The Type is a typographic study of Chinese typefaces,” Kim said.  “The Latin alphabet is assembled around a baseline, while CJK (Chinese-Japanese-Korean) is arranged and designed in squares. It's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typography and typesetting in China, but you can also connect it to the character design of Korean and Japanese”.

그는 최근에 샤르자 아트북 페어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아랍 에미리트에서 열렸던 샤르자 아트북 페어는 주최 측에서 참여자를 직접 초청하는 행사로 멕시코 시티, 카이로, 뉴델리, 키이우 등 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활동 중인 퍼블리셔와 작가들이 다수 참여했다. 그곳에서 독일과 한국,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출판물을 직접 보고, 관계자들을 만나 주고받았던 대화는 리딩룸을 실현하는데 기분 좋은 동력으로 작용했다.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에 대해서는 실제로 책을 직접 한 권, 한 권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Kim recently traveled to the Sharjah Art Book Fair (Focal Point 2022) and the Singapore Art Book Fair. The Sharjah Art Book Fair, held in the United Arab Emirates, was an invitation-only event that brought together publishers and authors from Mexico City, Cairo, New Delhi, and Keiwu, as well as publishers from other cities in Africa, the Middle East, and Central Asia. Seeing publications from Germany, Korea, and elsewhere that were not readily available in person in Berlin, as well as conversing with the people involved, strongly motivated Kim to realize the reading Kim. He was also impressed by the Singapore Art Book Fair.

“싱가포르 북 페어에서 만난 작가들의 작업 방식이나 출판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흥미로웠어요. 이들에게 출판은 일상에서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자 리서치의 한 방식이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이 사진집은(DAMNSEL)은 싱가포르의 사회적 규범이나 고정된 성 정체성에 반항하기 위해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고수하는 젊은 여성들을 촬영한 것이에요. ’STREET REPORT’ 또한 싱가포르 출판사인 Temporary Press에서 제작한 것인데, 첫 호인 ‘Public Bin’은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관찰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발행된 ‘Hooks & Holes’는 숭게이 로드에 있었던 벼룩시장의 도로에 나 있는 구멍이라든가, 혹은 천막을 고정하기 위해 설치된 고리 등이 기록되었어요. 흔히 싱가포르 하면 깨끗한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현대화를 겪은 다른 도시처럼 이곳도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시장이나 근대 문화가 많이 사라진 거죠. 이 간행물은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디자이너의 리서치 결과물입니다.”

2017년 공식적으로 폐지 수순을 밟은 이 시장은 현재 100여 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과거 시장의 활기는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쉬운 길 위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재발견된 이 흔적들은 이 책에서만큼은 객관적인 사진과 텍스트로 기록된 역사적 지표로 자리한다.

"I was very interested in the way the artists I met at the Singapore Book Fair worked and how they approached publishing. For them, publishing is a way of documenting their daily experiences, as well as a form of research. For example, this photography book (DAMNSEL) is about young women who choose their unique fashion style to rebel against social norms and fixed gender identities in Singapore. STREET REPORT is also produced by Singaporean publisher Temporary Press, whose first issue, "Public Bin," is an observation of how trash bins are placed on the streets and how people use them. The second issue, “Hooks & Holes,” documented the holes in the pavement of a flea market on Sungei Road, or the hooks used to secure tents. People think of Singapore as a clean country, but in reality, like other cities that have undergone modernization, a lot of traditional markets and modern culture have disappeared in the name of urban renewal. This publication is the result of the designer's research into these disappearing things.”

The flea market officially closed in 2017 and its former vibrancy has been reduced to a trace on the road that is easy to ignore. Rediscovered through the eyes of designers, however, these traces stand as historical markers, documented in the photographs and text of this book. 

“북페어에서 그레이 프로젝트 Grey Projects 의 운영자 'Jason Wee'도 만났어요. 15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레이 프로젝트는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에서 수집된 수백 권의 출판물을 열람할 수 있도록 ‘그레이 프로젝트 라이브러리’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동시에 작가 레지던시와 전시 프로젝트 또한 기획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제이슨이 그레이 프로젝트에서 출간한 책들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레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문장 속에서 앞으로 그가 리딩룸에서 구현해 낼 풍경이 어렴풋이 내비쳤다. 그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주로 스크린과 지면 위에서 자신만의 시각적인 규칙과 배열을 만들어내던 그였다. 그리고 지금, ‘공간 운영자'라는 역할을 하나 더해 독립출판물을 기점으로 퍼블리셔와 작가, 일반 대중이 만나는 플랫폼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Common Imprint, Gemeinsames Impressum, 공동의 출판, 一般出版‘ 영어와 독일어, 한국어, 중국어로 쓰인 커먼 임프린트의 풀네임처럼, 그는 여기에 어떤 지역적인 정체성을 강조하거나 독립출판물의 각기 다른 매력을 한 문장에 욱여넣지 않는다. 그보다 책마다 지닌 가치와 예술성을 지면에서 공간으로 확장하고, 이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장소로서 리딩룸을 말한다. 이곳에서 그는 오늘도 동료들과 함께 독립출판물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든 반갑게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박은지는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UdK)에서 박사 논문을 작성 중이며, 아티스트 북의 서지정보를 LOD로 발행해 컬렉션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프레스», «월간 디자인», «퍼블릭 아트» 등에 기고했다.

이메일: ejpark8073@gmail.com
웹사이트: udk-berlin.academia.edu/EunJiPark
*국문 텍스트 하단본 인터뷰는 2023년 9월 네이버 디자인프레스에 발행되었습니다.

Kim continued, "At the book fair, I also met the owner of Grey Projects, Jason Wee. Almost for 15 years, Grey Projects has been running a physical space called Grey Projects Library where you can browse through hundreds of publications collected from Singapore and Southeast Asia, and they also organize artist residencies and exhibition projects. Not long ago, Jason visited with some of the books published by Grey Projects."

The way Kim describes the Gray Project gives me a glimpse of what he'll be creating in the reading room. As a graphic designer, he had been following his own visual rules, mostly on a screen or on the page. Now, he has taken on the role of "project owner" and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platforms where publishers, writers, and the general public can meet, especially those that feature independent publications. Like the full name of the reading room, which is written in English, German, Korean, and Chinese, “Common Imprint, Gemeinsames Impressum, 一般出版,” he doesn't emphasize any regional identity, nor does he lump the different attractions of independent publishing together when he discusses the items he carries. Instead, he speaks of the reading room as a place where the value and artistry of each book can be extended from the page to the space, and connect people from different cultures. He and his colleagues might be busy welcoming anyone who loves independent publishing even at this moment.


Eunji Park is currently a PhD candidate at the University of the Arts Berlin (UDK), where she is working on a project to build a collection by bibliographic information of artists’ books as LODs. She has published articles in the Korean art magazines NAVER DESIGN PRESS, MONTHLY DESIGN, PUBLIC ART, and BEATITUDE.

Email: ejpark8073@gmail.com
Website: udk-berlin.academia.edu/EunJiPark
* The Korean version of the article was published in the Naver Design Press in September 2023.